2009년 5월 23일 새벽,
작은 시골마을의 산에서 63세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몸서리치게 무서운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무서운 사회에 대해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노학자는 "유동하는 공포"라는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통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한참을 멍히 있었고, 그 멍함이 그칠 때쯤 유동하는 공포에 나온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아우슈비츠나 굴락수용소, 히로시마 원폭의 도덕적 교훈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철조망 안에 갇히거나 가스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조건이라면’ 우리가 가스실의 경비를 서고, 그 굴뚝에 독극물을 넣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습니다.
조와 중과 동은 항상 사람들에게 "적당한 물질적 조건"과 "독극물을 넣으라"는 이데올로기를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본디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적당한 조건과 이데올로기하에서 너무나 '쉽게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운 겁니다. 이런 것이 언제 어떻게 나에게 그리고 사회에 닥칠 지 모른다는 것이 바로 '유동적 공포'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람들은 적당한 조건하에서 너무나 쉽게 경비를 서거나 독극물을 넣는 Agent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 적당한 조건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이 좋은 세상일 수도 있고, 나쁜 세상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적당한 조건'이라는 플랫폼을 관장하는 자. 그 플랫폼 위에 있는 수없이 많은 agent들을 주재하는 자. 그 주재자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자. 그것은 바로 조중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중동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중동이 만들어낸 세련되고 우아한 Matrix 속에서 우리는 코드화된 스테이크와 와인을 맛보는 있습니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모호해지는 현대사회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죠.
"현대의 자본주의는 억압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유를 관리하는 사회다"라구요.
내 자유를 직접적으로 억압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 대해 저항이나 반항을 하면 되죠.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런 직접적인 방식을 쓰지 않고, 내 자유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관리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대치의 전선은 명확하게 그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분명히 제어를 당하고 있는데, 저항 혹은 반항의 대상이 없어지는 거죠.
인터넷 쇼핑몰에는 콜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불만이 있을 경우 콜센터의 직원, 즉 '사람'한테 내 의견을 선명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글 애드센스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경우, 우리는 '사람'에게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어떤 불만을 가지고 얘기를 해도, 구글에서는 오직 '메일'로만 대화를 하지요. 이런 경우 우리는 맥이 빠지게 됩니다. 콜센터의 '사람'에게는 욕지꺼리도 하고 불만도 내뱉고 하소연도 할 수 있지만, 구글의 '메일'에게는 어떤 표출도 할 수가 없지요. 구글의 메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세련되고 모호하고 대치의 대상이 없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란 어떤 주재자가 만들어 놓은 적당한 조건-플랫폼-에 불과합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나를 관리하는 경비원-agent-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끔찍한 건 나 또한 누군가를 관리하는 경비원의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생활을 위해 다른 이와 그 가족의 안녕을 관리하게 하는 이런 구조의 플랫폼. 이 플랫폼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 플랫폼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주재자를 바꾸어야 합니다.
저는 그 주재자가 누구인지 선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재자.
주재자.
주재자.
그 주재자의 이름은 바로 조중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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